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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내가 단숨에










1


이메일 계정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그녀의 성과 이름을 알아냈다. 그녀가 떠난지 3시간하고도 20분이 흐른 지금 난 생년월일까지도 기억한다. 그렇게 도움을 주고 내 자리로 왔다. 2시간 내내 무언가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나를 부른다. 


Excuse me.


터벅터벅 다가갔다. 가장 상냥한 얼굴과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How can I help you?


눈이 온통 울먹울먹이다. 하마터면 울어버릴뻔 했다. 2시간 내내 로그인하려고 끙끙댔던 것이다. 내가 해보았더니 한 번에 들어가지더라. 너무도 미안했다. 당신이 2시간 동안 끙끙대던 것을 나는 20초만에 해내었으니. 다시 천천히 해보라며 다독였고, 결국에는 해냈다. 그러고나서야 가벼운 얼굴로 Thank you so much 하고 센터를 나섰다.




2


눈이 밝은 중년 남성이 나를 부른다. 그 옆에는 비쩍 마른 중년 남자가 앉아있다.


Excuse me.


아까부터 그 둘은 french 로 대화하더라. 눈이 밝은 그 남자는 영어에 매우 능통했다. 가끔 버벅이기도 했지만 내가 하는 말은 다 이해했고, 적당한 단어를 내뱉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비쩍 마른 중년 남자는 계속해서 눈이 밝은 남자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난 말했다.


Bonjour! Enchante!


얼마전부터 퀘백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french 단어를 몇몇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순간 미소로 가득찼다. 

이제서야 내 눈을 보는군요 당신. 

가능한 천천히 그리고 가장 큰 몸짓으로 대화했다. 그도 서툴지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이 밝은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 왔어요. 

눈이 밝은 남자는 알제리에서, 비쩍 마른 남자는 모로코에서 왔다. 기억한다. 그리고는 당연히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분 나쁜 대화는 아니었지만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비쩍 마른 그 남자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3


자주 보는 남자가 있다. Africa, Nigeria에서 온 남자이다. 젊어뵌다. 4개월 내내 뵈는 것을 보니 일자리 구하기가 넉넉잖은가 보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일자리 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이제 막 이민을 시작하고,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 그 덕에 활기차고 새로운 기운이 늘 함께한다. 이들의 표정에서 나는 울렁인다. 당신 다음에는 더 잘 될 겁니다. 이력서를 이리저리 고쳐보고 손대본다. 때묻은 이력서가 넘지못하는 벽이 보인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더 좋은 community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가끔 차갑다. 자신들이 counselor 의 자리에 서면 무엇인가 얻는 기분인갑다. 당신이 타인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지 말아야한다. 이 사람들 컴퓨터를 켤 줄 모르면서 이력서를 쓰겠다고 하고, 자기 언어밖에 쓰지 못하면서 workshop을 듣겠다고 한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으로 마음으로 손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내가 너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 이제 이곳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4


필리핀 가족이 우르르 찾아왔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20대 초반의 여자 둘, 남자 하나. 그 머스마가 자꾸 나를 쳐다보아 잔뜩 싱그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그러니 실실하고 웃어대는데 그게 실실이 아니다. 진짜 실실실실실실 웃는거라.


짧지 않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손길이 예뻤다. 웃을때 입을 가리는 것도, 꽁 묶은 뒷머리도 예뻤다. 아마 이 머스마가 기지배인가 보다 했다. 아무렴 어떠냐 넌 참 맑은 아이구나. 실실실실실실 웃는 것을 보고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내 모든 신경은 그 아이를 향해 있었다. 자꾸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은 정말 기분으로만 그칠 확률이 꽤 높다. 


그 가족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안녕.





-


그들에게는 너무도 절박한 일을 내가 단숨에 해내버릴 때에는 죄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당신들이 정말 갈망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을 내주고 싶어진다.


Thank you






아이고 이 사람들아 내가 더 고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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