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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꽃잎도 가끔은 꽃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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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는 일이 귀찮은 일은 적잖다. 그래도 적어야 하는 일이 자꾸 생각나서 적는다.


솔직히 나는 연기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한다고 한다. 어떤 것을 흉내내지는 못하지만 어떤 것이 될 수는 있다. 연극을 한 적이 굉장히 많다. 주인공을 맡아왔고, 열이면 아홉 아주 슬픈 역할이다. 왜냐. 나는 기필코 울어내고야 만다. 그게 참 대단한거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 내가 만든 생각과 상상과 대사와 조명, 그리고 무대 위에 갇힌 채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 자유로운 때 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때. 내가 울면 앞에 앉은 사람들이 운다. 아마 내가 연기로 우는게 아닌 것을 아는 모양이다. 가끔 연극이 끝나고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계속해서 엉엉 울어댈때면, 자유롭다. 그래서 깊은 곳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없다. 그래도 괜찮다. 살만하다.


이런 모습이 참 싫었다. 툭하면 울어대는 내 모습이 참 싫었다. 그때는 내가 왜 우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약하고, 약하고, 감정을 숨길 줄 모르기 때문에 운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린날의 나에게 미안하다. 늘 우리는 돌이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다. 그때 왜 그랬는지. 그게 참 큰 실마리이더라. 여튼간 나는 타인이 되어 버리기에 많이 울었던거다. '공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얕은 느낌이야.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눈을 보면 그 사람이 되어버려 울었던거다. 잘했다. 잘 울었다. K가 나에게 참 부럽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타인 감정 타인 상황 끌어당기는 것이 부럽다고 한 적이 있다. 고맙다. 사실 그 때 한 발을 떼었다. 큰 일이다.


좋은 점만 있겄느냐. 대신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이 있는데. 나 때문에 우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내 일은 만들지도, 보살피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서툴고, 뭐라고 말하기도 쑥스럽고, 심지어 너무 귀찮고 작아보인다. 타인의 생에 울지만 정작 내 생은 이해하지도, 그것에 울지도 않는다. 이 사실을 캐나다에 와서 최근에야 알아챘다. 그리고 많은 과거 상황들을 떠올리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이미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럼에도 이리 적는 것은 필요성을 조금 느끼기 때문이다.


에라이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찾아왔다. 차라리 사람들이랑 뒤엉켜 사는 것이 편하겠다. 내 혼자 보내는 시간 좋지만 그때는 책을 읽는거다. 영화를 보는거다. 그것도 남일이다. 또 남의 생을 내 생처럼 살아내는 순간을 보내겠지. 그것도 안하고 혼자 사는 시간이라. 무대위에서 나를 연기하는 시간이라. 그건 그리 편하지 않을게다. 아마 처음에만. 연극이 끝난 후에 내 얼굴에서 빛이 날거야. 지낼거다 혼자서. 찾을거야.


거울도 가끔은 거울을 봐주어야 한다고 거울이 거울에게 말했다 고 누가 말했다. 꽃잎도 가끔은 꽃잎을 봐주어야 한다고 꽃잎이 꽃잎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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