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진도 그림도 떠오르지 않아 빈 공간 )))))))))))))))))))))
어쩌지도 못한다. 점점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몸까지 뜨거워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핑글핑글. 핑글핑글이라는 네 글자를 적는 데에도 토할것 같이 어지럽다. 좋은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듣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소 잘 읽히던 책을 보아도 그대로야. 예쁜 사진을 정신없이 찾아 보는데도 진정 되지 않아. 모든 것이 꽉 차있어서 텅 비어지지가 않는다. 목이 뜨겁다. 유일하게 차가운 것은 내 두 손과 두 발. 사실 유일한 것인지는 모른다.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하니? 안정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평화라는 것은 무엇이니.
날이 갈수록 솔직해진다. 시작점은 명확하다. 대동제 핑계로 학교에 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난 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 낯선 사람이 되고는 싶었나보다. 1년이라는 시간을 멀리 있었음에도 나는 낯선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하나를 만났다. 주저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도 하나는 봤을거야. 내 옆에서 서 있어주고, 나를 바라보는 그 눈이 좋았다. 그래도 난 계속 주저했다. 둘이 주 사랑을 갔다. 얼마만이야. 사람들로 북적일 줄 알았던 주사랑에는 이모와 한 아저씨만 있었다. 우리는 깊숙한 곳으로 가서 앉았다. 자몽에 이슬을 마시자 했다. 그리고 하나는 두 병을 가지고 왔는데, 나는 놀랐다. 한 병을 가지고 올 줄 알았기 때문이야.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주저하며 말을 띄었던 때. 그러다 어떠한 겁도 내게 남지 않았을 때.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해졌다. 그 와중에도 난 주저했고, 하나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좋다고 했다. 고마워서였을까. 아님 두려워서였을까. 난 울었다. 그 후로 계속 울게 된다. 캐나다서 1년동안 꾹 참아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풀려버렸는데, 그게 무서웠다. 솔직해진다는 것은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느낌. 그 와중에도 뭐라도 가려보겠다는 내 눈빛과 표정. 이런 말을 하기 싫다 했고, 이런 말을 하기 싫다고 하는 말을 하는 내가 싫다고 했고, 이런 말을 하기 싫다고 하는 말을 하는 내가 싫다고 하는 말을 하는 내가 싫다고 했다. 완전 무한반복. 그 밤을 지새운 후로도 난 평소처럼 살았다. 그런데 평소처럼 살아지지가 않는 것이라. 너무 힘들었다.
또 하나를 만났다. 그 날 밤 있었던 주저함은 다 사라졌다. 처음으로 긴 시간(30분이었나, 1시간이었나) 택시를 타고 합정에서 역곡으로 달려갔다. 택시를 타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고, 더군다나 내가 정말 싫어하는 어둠 속에서 택시를 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다음날 이른 시간 부터 약속도 있었다. 내 주변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냥 하나가 보고 싶어서 주저 없이 가겠다고 했고, 가방을 기어코 가지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아저씨는 씨발 씨발 거리며 욕을 했다. 물론 나에게 한 것은 아니지. 평소에는 점심으로 고등어를 먹었는데, 오늘은 갈치를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체했다고 했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앞이 잘 안보인다고 했다. 하나도 불안하지가 않았다. 나는 하나를 만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홈플러스 앞에서 하나를 만났고, 편의점에 들러 하나 집으로 갔다. 새벽 3-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하나도 안 졸리고 너무 좋았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주저함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보여줬고, 나래가 만든 5분 영상도 보여줬다. 고요한 적막속에 바라봐주는 하나가 좋았다. 껌껌한 방으로 갔다. 내가 싫어하던 그런 어둠이 아니었다. 그래서 잘도 잤다. 물론 중간에 일어나서 토했다.
내가 낯설어지는 순간은 처음이다. 마주하기가 힘들다. 초라하고, 약한 모습이다. 그런데 반갑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이제껏 어찌 지내왔나 싶을 정도로 이 모습이 반갑다. 나에게 솔직해지는 일을 내 스스로 할 수 있다 생각했다. 물론 스스로의 몫이 겠지. 다른 사람 앞에서 시작 될 줄은 몰랐던 거다.
듣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순간 순간 튀어나오는 내 익숙한 모습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낯설었던 내 모습이 반가워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계속 끌어안으려고 한다. 오늘 고은이가 내게 물었던 그 방황은 이 중간의 어느 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보다. 이런 방황이 참 반갑다. 와주어 고맙고, 그냥 보내기 싫어.
어떻게 끝 마쳐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퇴근하고 집에 온 후의 시간처럼 많은 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방황을 반갑게 끌어안을 수 있는 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이고, 내일 모래고, 방황이 내가 될 때까지.